어느 설문 조사를 보니 가정에서 부부 사이에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텔레비젼 체널을 누가 정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고, 젊은 사람들이 사귈 때 연예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누가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처음에는 자녀들이 반항을 하지만 언제부터 부모의 잔소리에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게 되면 이미 주도권은 자녀에게로 넘어간 증거라고 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신앙생활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는 헌금의 액수를 결정할 때 누구 의사를 따라 결정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할 수만 있으면 자기가 주도권을 쥐고 싶어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결정하는 왕은 언제나 따로 있습니다. 누가 우리 삶의 진정한 왕입니까? 이 질문이 왜 중요합니까? 그 이유는 누가 왕이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향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사사기는 하나님의 왕되심을 부정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결국 후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 어리석은 사람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들을 다스릴 왕이 없으니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함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 자유함이 결국은 스스로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사기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할 진리는 우리 삶을 다스리는 진정한 왕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며 하나님외 다른 어떤 것이 우리 삶을 다스릴 때 반드시 실패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고 끝까지 바른 삶의 기준을 가지지 못해 망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 여기에 모인 우리들의 삶의 기준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사기 후반부에는 동족간에 벌어진 싸움으로 인해 베냐민 지파가 얼마 되지 않은 남자들만 남고 모두 전멸을 당하고 마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장 후사를 이을 여자가 없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도우지 않는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을 죽이고 거기서 처녀들을 빼앗아 베냐민 지파 남자들에게 줍니다. 그것도 모자라니 실로의 여자들을 강제로 납치하여 그들의 아내로 삼으려고 합니다. 자기 민족에게 유익이 되면 다른 족속은 죽든말들 상관없이 잔인한 일도 서슴치 않고 저질러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무모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은 자기들 스스로가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맹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들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주위의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게 됩니다. 야베스 길르앗 거민 가운데 처녀들만 빼놓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죽여 버립니다. 여호와의 절기를 즐기기 위해 나온 실로의 처녀들을 강제로 납치해서 베냐민 자손들이 자기들의 아내로 삼도록 부추깁니다. 자기들의 맹세만 지킬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희생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자기들 체면만 살릴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아픔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무시해버립니다. 자기들의 신실함을 과시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합니다. 자기들은 스스로의 맹세에 충실했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유없이 고통을 당하고 맙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잔인한 백성으로 만들었습니까? 그들 가운데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체면 세우려다가 오히려 체면을 구기고 맙니다.
한해의 마지막이 가까이 다가오는 때를 맞아 누가 내 삶의 주인이었고, 누가 왕이었는지 스스로 물어봅니다. 솔직히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셨고, 그분이 내 삶의 왕이셨다고 고백하기 쉽지 않습니다. 왜 머리로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 살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재 삶 속에서는 그렇지 못할까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업을 하는 어느 사업가의 말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분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편법을 쓰지 않고 정직하게 사업을 한다는 것은 손발을 다 묶고 달리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참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사실 이 땅에서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눈을 뜨고 보물을 도둑맞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지 않고 우리 자신을 주인 삼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분의 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손발 묶인체로 10년을 죽을 각오로 열심히 뛰다보니 지금은 저희 회사가 같은 업종에서 1등을 달리고 있습니다. 역시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방식대로 살아야 제대로 산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음식점도 주인이 바뀌면 새로운 주인이 새로운 경영방식을 가지고 새롭게 단장하고 시작하지 않습니까? 낡은 식탁들은 버려지고. 새로운 벽지를 바르고 이전보다 훨씬 더 밝아집니다. 대청소를 해서 전보다 훨씬 더 청결해집니다. 똑같은 장소이지만 주인이 바뀌면 새로운 변화가 생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집에 주인으로 들어오시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우리 삶을 제대로 경영해주실 유일한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남은 생애 내 삶의 창에 ‘주인이 바뀌었습니다!’라는 뚜렷한 글귀를 붙이고 살고 싶습니다. 주인되시는 예수님께서 내 삶의 구석구석 돌아보셔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으로 변화시켜 주시길 소원하며 살고 싶습니다. 내 삶의 더럽혀진 곳은 정하게 하시고, 굽어진 것을 펴주시고, 낡은 것은 새것으로 교체해주시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어느덧 나이가 후반전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 스스로 주인을 바꾸어야할 때입니다. 지금 이 때는 예수님을 내 삶의 왕으로 모셔야할 때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도록 크게 외쳐야할 때입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