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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터

     요즘 나 자신이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나 자신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나를 향해 하는 말은 내가 들어야할 가장 중요한 말인 동시에 나를 올바로 세워가는데 가장 필요한 말입니다. 하지만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은 너무 정확하기 때문에 그것을 듣기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향해 하는 말은 아주 무섭습니다. 그러다보니 내 안에 그 말을 들을 마음과 귀를 소유하는 것이 힘듭니다. 가끔씩 나를 향한 나의 말이 들리면 억지로 무시하거나 은근슬쩍 피하려고만 하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들의 비난이나 평가에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의 평가는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내 속에서 들리는 음성을 회피한다면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을지 몰라도 나를 가장 정확하게 평가하는 내 마음의 소리로 부터는 형편없는 평가를 피할 수 없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의 충고를 무시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일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 속에 있는 진정한 나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에수님께서 큰 이적을 베푸실 때마다 사람들을 그를 억지로 잡아 자기들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도 넉넉히 먹이시니 이런 왕을 앞세우고 전쟁을 하면 저 지긋지긋한 로마의 압박에서부터 넉넉히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인기가 치솟아 올라갈 때마다 군중들을 피하여 홀로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군중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 가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군중들의 큰 소리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길이 아닌 다른 방향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떠들썩한 군중들의 소리를 피하여 예수님은 빈 들에서 조용히 자신 속에서 들리는 소리와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 사역을 하셨습니다. 불행하게도 당시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는 자기 속에서 들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고, 예수님에게 결코 해로운 일을 하지 말라는 자기 부인의 간곡한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의 귀에는 오직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들의 큰소리만 들렸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줌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그의 이름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수치의 대명사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자기 귀에 들리는 소리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좋은 소리에는 웃음을 짓게 되고, 나쁜 소리에는 화를 내게 됩니다. 흘러 지나가는 소리같지만 때때로 그 소리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무슨 소리를 듣고 자라느냐가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릴적에 부정적인 소리를 듣고 자라면 세상을 아주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고, 반대로 긍정적인 소리를 듣고 자라면 쓰레기더미 속에서도 꽃은 피어 오른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쁜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상하고 좋은 소리를 들으면 사는 맛이 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내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들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내 귀에 거슬리는 소리 가운데 내 삶을 살리는 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쉴새없이 내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것도 세미하게 내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 소리를 들어야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를 향해 들려오는 그  분의 음성을 들을 때 들어야지 너무 늦게 들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가을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지만 우리 귀에는 지겹도록 우울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와서 우리를 낙심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번 주말에는 분주하고 혼란스러운 생활을 잠시 접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우리를 사랑으로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쁨을 함께 맛보기 원합니다.